일본 국민들이 70년 이상 자민당을 선택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 자민당의 장기집권은 현대 민주주의 역사상 가장 놀라운 사례 중 하나다. 1955년 창당 이래 1993-1994년, 2009-2012년을 제외하고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장기집권을 해왔다. 이는 권위주의 체제가 아닌 민주주의 국가에서 벌어진 일이기에 더욱 주목받는다.

그렇다면 일본 국민들은 왜 67년 동안 한 정당을 계속 선택했을까? 그 비밀을 파헤쳐보자.

이시바 총리
1. 파벌 정치라는 독특한 시스템

자민당의 가장 큰 특징은 **'파벌 정치'**다. 자민당의 파벌들은 오랜 기간 동안 일본 정치 구조의 중요한 축을 이루어 왔으며, 그들 간의 경쟁과 협력이 자민당 권력 구조에 큰 영향을 미쳤다.

파벌 정치의 메커니즘

일본의 파벌은 법인격을 갖는 공식적 조직으로 사실상 정당 내의 소규모 정당과 유사하다. 이는 다음과 같은 기능을 수행했다:

  • 권력 배분의 도구: 파벌은 내각, 당, 의회의 주요 직책을 배분하는 데 주한 도구가 되며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표를 모으는 데도 중요하다
  • 정책 방향 결정: 파벌 간의 경쟁과 협력 구도가 자민당 내 리더십 결정과 정책 방향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 유권자에게는 다양한 선택지 제공: 창당 수십년이 된 자민당 소속 의원들의 스펙트럼은 다양합니다. 정치인을 골라야 하는 유권자 입장에선 '종합 쇼핑몰'인 셈이죠

이런 구조 덕분에 자민당은 여러 파벌들의 경쟁과 합의 속에 차기 총재가 탄생하는 구조가 되었고, 유권자들은 굳이 다른 정당을 찾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2. 정치적 유연성과 실리주의

자민당 성공의 두 번째 비밀은 이념보다 실리를 추구하는 유연함이다.

진보적 의제까지 흡수하는 포용력

전문가들은 자민당이 장기집권에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로 '유연함'을 꼽는다. 외교·안보뿐만 아니라 사회·복지 분야에서 진보적인 의제까지 흡수하며 외연을 확장해 왔다는 평가다.

구체적 사례들:

  • 사회보장 제도 구축: 국민건강보험, 국민연금, 최저임금 등을 제도화해 일본의 사회보장 토대를 마련한 것은 자민당의 대표적인 공적으로 꼽힌다
  • 외교 노선의 과감한 전환: 1972년 중국과의 수교를 추진하였다. 이 과정에서 닉슨의 방중을 반대하는 등 자민당 내 반중 정서를 추진해 오던 사토 에이사쿠 계파가 쇠퇴하고 다나카 가쿠에이가 총리가 되면서 자민당은 재빠르게 외교 노선을 혁신적으로 수정하였다

이러한 진영 논리에서 벗어난 철저한 실리주의적 융통성과 리적인 정책 추진, 상황에 따른 빠른 노선 변경은 일본 시민들로 하여금 굳이 야당을 선택해야 하는 필요성 자체를 느끼질 못하게 함과 동시에 일본 시민들의 광범위한 지지로 연결되었다.

3. 이익유도 정치의 시스템

자민당의 세 번째 무기는 **'이익유도 정치'**였다.

역설명 책임 체제

자민당 정권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든 비판적으로 평가하든, 자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에게는 어떠한 형태로든 경제적 이익이 있었으며, 유권자와 자민당 간에 호혜적인 관계가 존재했다.

하지만 이것이 일반적인 민주주의와 달랐던 점은:

  • 설명 책임의 역전: 정치가나 정당이 유권자들로부터 지지를 얻기 위해 경쟁하기보다는 유권자가 집권당이 주는 이익을 얻기 위하여 경쟁해야 하는 '설명 책임의 역전 상태', 즉 '역설명 체제'가 자민당 장기집권을 가능케 했던 일본 정치체제의 구조였다
  • 재정과 규제를 통한 통제: 이러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민당은 예산을 통한 재정정책과 규제조치를 활용했다

4. 선거 제도와 구조적 요인

중선거구제의 영향

중선거구제 하에서는 같은 선거구에 출마한 자민당 후보들은 서로가 같은 당에 소속된 동지임과 동시에 당선을 다투는 라이벌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 파벌 의존성 강화: 각 후보자는 선거 운동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개인 후원회를 조직하거나, 영향력이 강한 정치인의 파벌에 들어가 그 정치인의 뜻에 따르면서 선거 때마다 파벌의 지원을 받는 방법을 택했다
  • 당내 경쟁 구조: 이는 자연스럽게 당내에서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을 만들어냈고, 유권자들에게는 하나의 정당 안에서도 선택의 폭을 제공했다

공명당과의 연립

자민당이 1999년에 공명당과 손을 잡으면서 세력을 강화한 것 역시 장기집권에 기여한 요인 중 하나입니다. 공명당의 조직 기반은 1960년대에 설립된 창가학회로, 공명당과 손을 잡는다는 것은 선거에서 특정 비율만큼의 투표수를 가져올 수 있음을 뜻합니다.

5. 야권의 구조적 약함

자민당 장기집권의 또 다른 이유는 대안 세력의 부재다.

신뢰받지 못한 정권 교체 경험

민주당은 2009년 8월 중의원 총선거에서 480석 중 308석을 획득하면서 자민당 독주 체제였던 일본 정치의 판을 뒤집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민주당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는 오래가지 못했죠.

실패 요인들:

  • 외교 실책: 민주당 승리로 집권한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오키나와현 후텐마 미군기지 이전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내각 지지율은 집권 8개월만에 20%대로 추락했죠
  • 경제정책 실패: 민주당은 경제정책으로는 정부 재정을 동원해 무상복지 정책을 펼쳤는데, 재정이 고갈되자 소비세를 올렸습니다. 그러면서 조세 저항이 강하게 일어났죠

구심점의 부재

자민당 정권에 비판적인 유권자들을 끌어들일 만한 대안 세력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수십 년간 1강 체제를 구축해왔고 굳건한 지지층을 가지고 있는 자민당에 맞서려면 자민당에 비판적인 유권자들을 한곳으로 결집시킬 구심점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 일본 야권에는 이러한 구심점 역할을 할 만한 정당이나 세력이 없다.

6. 일본 사회의 문화적 특성

강자에 순응하는 문화

일본인들은 이 속담처럼 강자에게 반항하지 못하고 숙이고 들어가는 속성을 보인다. 정치계에서는 자민당이 강자다. 그런 자민당에 정치는 맡겨버리고 개인들은 제각각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아 왔다.

갈등 회피 성향

종적 사회로서의 특성이 강한 일본에서 상호 대립각을 세웠다가 밀려나게 되면 '배제'될지도 모른다는 직관적 두려움이 깊이 내재돼 있다. 이러한 문화적 특성은 정치적 변화에 대한 저항을 만들어냈다.

현재의 위기와 미래

하지만 자민당의 장기집권 시스템도 최근 들어 흔들리고 있다. 2023년 말에는 자민당 내 주요 파벌들의 정치자금 부실 기재 의혹이 불거져 대중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자민당의 신뢰도를 크게 저하시켰다.

2024년에는 통일교 게이트, 정치자금 논란으로 인한 자민당의 이미지 악화와 경기 침체로 인해 다시 위기감이 고조되었고, 그래도 자민당이 과반을 확보할 거라는 예측이 예상을 뒤엎고 빗나가면서 2009년 이후 15년 만에 자민공명 연립 과반에 실패했다.


자민당의 67년 장기집권은 다음과 같은 요인들의 복합적 결과였다:

  • 정당 내 다원성과 파벌 정치의 묘
  • 이념보다 실리를 추구하는 유연성
  • 이익유도를 통한 지지층 관리
  • 효과적인 연립 정치
  • 야권의 구조적 약함
  • 일본 사회의 문화적 특성

그러나 집권을 지속하기 위해 재정과 규제를 통해 공공정책과 보조금을 배분하여 표를 모으는 이익유도 정책은 되려 전통적인 지지기반을 약화시키는 모순을 표출했다는 점에서, 장기집권이 반드시 건전한 민주주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교훈을 남긴다.

자민당의 사례는 민주주의에서 한 정당이 어떻게 장기간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연구 사례다. 하지만 동시에 정치적 경쟁과 권력 교체가 민주주의의 건전성에 얼마나 중요한지도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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