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 와인 페어링, 융점 27.4°C가 공식을 뒤집는다
요약: 한우 와인 페어링, 정말 묵직한 레드가 정답일까?
- 한우 1++(BMS 9) 지방의 융점은 약 27.4°C, 호주산은 약 41.15°C다. 체온보다 높은 호주산 지방은 입안에서 녹지 않는다.
- 탄닌은 침 단백질보다 음식 속 지질과 약 10배 강하게 결합한다. 마블링이 탄닌을 먼저 붙잡아 떫은맛을 지운다.
- 그래서 "기름진 고기엔 탄닌 센 레드"라는 공식은 한우 앞에서 반쯤 무너진다. 탄닌은 기름을 씻어내는 게 아니라 기름에 흡수된다.
- 한우자조금관리위원회가 공식 추천한 등심 스테이크 와인은 카베르네 소비뇽이 아니라 피노 누아다.
- 소믈리에 심사단이 한우 육회 1위로 꼽은 것도 무거운 레드가 아니라 산머루 드라이와 크레망 계열이었다.
27.4도와 41.15도
한우 등심이 혀 위에서 사라지는 느낌은 기분 탓이 아니다. 권하나·최창본(2015)의 비교 자료를 보면 한우 BMS 9등급 지방의 융점은 약 27.4°C, 호주산은 약 41.15°C다. 사람 체온은 36.5°C 언저리. 호주산 지방은 입안에서 녹을 방법이 없어 씹어 부수는 수밖에 없고, 한우 지방은 들어가는 순간 이미 녹는 중이다.
양도 다르다. 같은 연구에서 근내지방 함량은 한우 BMS 3이 11.91%, BMS 9가 23.92%, 미국산 8.36%, 호주산 4.47%였다. 부드러운 질감과 연결되는 올레인산은 한우 44.9~47.7%, 미국산 43.70%, 호주산 38.28%. 다만 이 수치는 출처마다 편차가 커서 "이 연구 기준"이라는 단서가 필요하다.
중요한 건 순위가 아니라 상태다. 어느 고기가 더 좋으냐를 가리자는 게 아니라, 녹는 지방과 안 녹는 지방은 와인 입장에서 전혀 다른 상대라는 얘기다. 씹어서 부숴야 하는 지방은 입안에 오래 남고, 녹아버리는 지방은 혀 전체에 얇게 깔린다. 와인이 도착하는 무대가 다르다.
탄닌은 기름을 씻어내지 않는다, 기름에 붙잡힌다
거의 모든 페어링 글이 말한다. 기름진 고기엔 탄닌 강한 레드를 곁들여 입안을 정리하라고. 그런데 입안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좀 다르다.
떫은맛은 탄닌이 침 속 단백질과 뭉치면서 윤활이 사라지는 감각이다. 문제는 탄닌이 양친매성이라 기름에도 붙는다는 점이다. 2021년 연구에 따르면 탄닌은 침 단백질보다 지질에 약 10배 강하게 결합한다. 고지방 치즈를 먹고 나면 같은 와인이 순해지는 이유, 이른바 카망베르 효과다.
한우에 대입하면 그림이 뒤집힌다. 마블링이 촘촘하고 그 지방이 체온에서 이미 녹아 입안에 퍼져 있다면, 탄닌은 씻어낼 대상이 아니라 흡수될 매질을 만난다. 큰맘 먹고 고른 강한 탄닌이 지방에 먹혀 밋밋해진다. 근내지방도 19%를 넘는 1++ No.9라면 더 그렇다. 비싼 와인을 열었는데 "생각보다 밍밍한데"라는 말이 나왔다면, 와인이 아니라 고기가 한 일일 수 있다.
덧붙이자면 이 마지막 문단은 검증된 일반 메커니즘에서 한우로 끌어온 추론이다. 한우 지방이 특정 와인의 탄닌을 얼마나 깎는지 직접 측정한 연구는 찾지 못했다. 다만 공식 추천이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공식 추천도 카베르네가 아니었다
한우자조금관리위원회가 오세득 셰프와 함께 2023년에 내놓은 페어링은 이렇다. 등심 스테이크에 피노 누아, 업진살·제비추리·토시살 같은 특수부위 구이에 시라, 갈비찜에 그르나슈, 육회에 카베르네 소비뇽.
배치를 다시 보자. 가장 마블링이 좋은 등심에 가장 가벼운 축인 피노 누아가 붙었다. 통념대로라면 여기에 진한 카베르네가 와야 한다. 오히려 지방이 적거나 양념을 쓰는 쪽으로 갈수록 무거운 품종이 배치됐다.
육회는 더 노골적이다. 국가대표 소믈리에 심사단이 뽑은 한우 육회용 와인 5종에서 1위는 크라테 산머루 드라이 2015였고, 까땅 소바주 크레망 달자스 브뤼 같은 스파클링이 함께 올랐다. 무거운 레드는 없었다. 생고기의 철분과 참기름을 감당한 건 탄닌의 무게가 아니라 산도와 기포였다.
부위별 페어링표
| 부위 | 성질 | 방향 | 근거 |
|---|---|---|---|
| 등심 | 마블링 최상, 지방이 탄닌을 크게 흡수 | 피노 누아처럼 탄닌 낮고 산도 있는 레드 | 한우자조금·오세득 셰프 공식 추천 |
| 채끝 | 등심보다 지방 적고 결이 단단함 | 중간 바디, 탄닌은 중간 이하 | 자료 없음 — 지방량 차이에서 유도 |
| 안심 | 지방이 거의 없어 탄닌 완충이 약함 | 가벼운 바디, 떫은맛 적은 쪽 | 자료 없음 — 완충 원리에서 유도 |
| 갈비살 | 지방과 근막이 섞여 구울 때 향이 강함 | 시라처럼 향신료 결이 있는 레드 | 특수부위 구이 추천에서 유도 |
| 육회 | 생고기, 참기름·철분 뉘앙스 | 산도 높은 내추럴·스파클링 | 소믈리에 심사단 선정 결과 |
채끝·안심·갈비살 세 줄은 전문가 자료를 옮긴 게 아니다. 지방이 많을수록 탄닌이 지워진다는 원리를 부위별 지방량에 대입해 유도했다. 확정된 공식이 아니라 출발점으로 쓰시길.
예산은 농도가 아니라 산도에 쓴다
가격은 채널마다 수시로 바뀌니 스타일만 말하겠다. 2만원대에도 칠레·호주산 카베르네나 쉬라즈 같은 대중적인 선택지가 있고, 5만원 안쪽이면 프리미엄 카베르네 계열까지 닿는다. 문제는 그 위다. 예산이 오르면 더 진한 쪽으로 가려는 관성이 붙는데, 한우 등심이라면 그 돈은 농도가 아니라 짜임새에 쓰는 편이 낫다. 숙성된 네비올로, 균형 잡힌 프리미엄 말벡, 산도가 살아 있는 시라 쪽이다. 값이 오를수록 탄닌을 더 사는 게 아니라 산도와 여운을 산다고 생각하면 실패가 준다.
그럼 맥주는
기름진 구이에 맥주를 드는 사람도 많다. 이쪽은 경로가 다르다. 맥주의 쓴맛은 홉에서 오고 탄산과 함께 입안을 비운다(맥주에 홉을 넣는 이유). 마블링 좋은 소고기에 화이트를 붙이는 접근도 성립하는데, 그건 와규와 화이트와인 쪽 이야기다. 참고로 올레인산만 보면 거세 한우 49.75%, 와규 49.91%로 사실상 같은 수준이라는 연구가 있다. 우열이 아니라 둘 다 녹는 지방의 세계라는 뜻이다.
기억할 문장은 하나면 된다. 탄닌은 지방을 이기지 못한다. 오늘 등심을 구울 계획이라면, 가장 진해 보이는 병 대신 가장 산뜻해 보이는 병을 한 번 집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