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데헌 호랑이 더피와 까치 서씨, 원본은 434년 전 그림이었다

요약: 케데헌 호랑이와 까치는 무슨 그림에서 나왔나?

  • 둘의 원본은 조선의 까치호랑이다. 작호도(鵲虎圖), 호작도(虎鵲圖), 까치호랑이 — 표기는 셋이지만 같은 그림을 가리킨다.
  •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호작도는 1592년 임진년 작품이다. 화면 오른쪽 위 발문에 그해에 그렸다고 적혀 있고, 리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2025년 9월에야 일반에 처음 공개됐다.
  • 호랑이는 권력자, 까치는 민중으로 읽는 해석이 널리 통한다. 민화 속 호랑이가 이빨을 드러내고도 어딘가 얼빠져 보이는 이유다.
  • 감독 매기 강이 호랑이 이름을 더피(Derpy)로 정한 근거도 여기 있다. 민화 호랑이가 "very goofy"해서였다고 본인이 말했다.
  • 함정 하나. 호랑이와 까치는 재앙을 물리치는 그림이고 저승사자는 죽음을 인도하는 존재다. 전통 도상 문법으로 보면 원래 한 화면에 세우지 않는 조합이라는 지적이 있다. 케데헌은 그 둘을 나란히 세웠다.

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 헌트릭스 옆을 졸졸 따라다니는 호랑이와 까치. 이름은 더피와 서씨(Sussie)다. 본편에는 한 번도 나오지 않고, 공개 후 감독이 밝혔다. 굿즈로 먼저 팔리고 이름은 나중에 알려진 셈인데, 국립중앙박물관 뮤지엄숍의 까치호랑이 배지는 온라인 줄서기와 오픈런이 붙을 만큼 팔려나갔고 2026년 1월부터는 오프라인 매장에서만 한정 판매로 바뀌었다.

그런데 이 조합은 감독이 새로 만든 게 아니다. 호랑이와 까치를 한 화면에 세우는 그림은 조선에서 수백 년간 반복 제작된 정형이다. 얼마나 오래됐냐면, 지금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한 점이 1592년에 그려졌다.

434년 전 그림에 이미 다 있었다

호작도는 대개 "조선시대 민화"라고 뭉뚱그려 설명된다. 연도가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림에 제작 연도를 적어놓는 관행 자체가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 리움미술관이 소장한 호작도는 화면 우측 상단 발문에 임진년, 즉 1592년에 그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비단에 수묵, 160.5×95.8cm. 현존 최고(最古) 호작도로 꼽히는 작품이고, 오랫동안 공개되지 않다가 2025년 9월 리움미술관 상설기획전 '까치호랑이 虎鵲'에서 처음 일반에 모습을 드러냈다. 전통 회화와 민화 일곱 점을 모은 이 전시는 2025년 9월 2일부터 11월 30일까지 열렸다가 지금은 끝났다.

여기서 짚어둘 게 있다. 1592년작은 우리가 아는 민화가 아니다. 정통 회화 형식에 가깝다. 원래 이 도상은 중국 원나라에서 시작된 형식이었고, 1592년작은 그 형식이 조선의 그림으로 바뀌어가는 중간 지점을 보여준다. 우리가 '까치호랑이'라고 부르며 떠올리는 어수룩한 호랑이는 그로부터 한참 뒤, 조선 후기에 완성된 얼굴이다.

호랑이는 어쩌다 바보가 됐나

궁중에서 그린 호랑이는 위엄이 있다. 민화의 호랑이는 다르다. 새빨간 입술에 뾰족한 이빨을 드러내놓고도 표정이 도무지 무섭지 않다. 눈은 사팔이고, 자세는 어정쩡하다. 그 옆에서 까치는 소나무 가지에 앉아 당당하게 지저귄다.

여기에 붙는 해석이 있다. 호랑이는 권력자, 좁혀 말하면 탐관오리고 까치는 민중이라는 읽기다. 까치가 호랑이 앞에서 할 말을 다 하는데 호랑이는 멀뚱히 보거나 아예 딴 데를 본다 — 민심을 못 알아듣는 권력의 초상이라는 것이다. 학계가 하나로 정한 정설은 아니지만, 가장 널리 통용되는 해석이다.

이 구도가 성립한 건 그림이 궁중에서 민간으로 내려오면서다. 형식은 위에서 받았는데 그리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바뀌자, 호랑이가 조금씩 우스워졌다. '바보 호랑이 + 당당한 까치'라는 조합은 그렇게 조선 후기에 독자적인 장르가 됐다.

까치 쪽 상징은 그보다 단순하다. 까치는 좋은 소식을 물어오는 새다. 정월 아침에 까치가 울면 그해 운이 좋다는 속신이 있었고, 새해에 기쁜 소식을 알린다는 뜻의 신년보희(新年報喜)라는 말도 여기서 나온다. 층을 하나 더 두면, 호랑이는 산신의 사자이고 까치는 그 뜻을 전하는 전령이다. 호작도에 소나무가 거의 빠지지 않는 것도 이 구성 때문이다.

이 그림은 감상용이 아니었다

까치호랑이를 미술품으로만 보면 절반을 놓친다. 이 그림의 실제 용도는 문배도(門排圖)였다. 정월 초하루에 대문에 붙이는 그림이다. 용을 그린 운룡도와 짝을 지어 양쪽에 붙였고, 목적은 잡귀를 막는 것이었다.

액자에 넣어 거는 물건이 아니라 붙였다 떼는 소모품이었다는 뜻이다. 지금 남아 있는 호작도 대부분이 종이에 그려진 것도, 상태 좋은 옛 작품이 드문 것도 이 쓰임 때문이다.

그러니까 케데헌에서 더피와 서씨가 악귀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장면은, 원전과 꽤 맞아떨어진다. 이 그림의 원래 직무가 문 앞을 지키는 일이었다.

호돌이도 여기서 나왔다

한국이 호랑이를 세계에 내보낸 게 처음은 아니다.

19세기 호작도 중에 '피카소 호랑이'라는 별명이 붙은 작품이 있다. 종이에 수묵담채, 91.7×54.8cm, 개인 소장. 면을 뚝뚝 끊어 붙인 듯한 대담한 조형 때문에 그런 별명이 붙었는데, 이 그림이 1988 서울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의 모티브가 됐다.

1988년의 호돌이와 2025년의 더피 사이에 400년 넘은 그림 한 장이 놓여 있는 셈이다. 한 세대에 한 번씩, 같은 원본에서 캐릭터가 다시 태어난다.

호작도에는 변주도 있다. 신재현이 1874년경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116.5×83.0cm, 개인 소장)은 어미 호랑이와 새끼, 그리고 까치 여러 마리를 한 화면에 배치했다. 호랑이 한 마리와 까치 한 마리라는 기본형에서 벗어난 드문 사례다.

더피 디자인의 진짜 레퍼런스는 고양이 두 마리

매기 강은 민화 호랑이의 묘사가 "very goofy"하다고 표현했다. derpy라는 별명이 여기서 나왔다. 그리고 더피의 최종 디자인은 감독 본인이 아니라 남편이 맡았고, 부부가 키우는 납작코 히말라얀 고양이 두 마리가 레퍼런스가 됐다.

민화의 얼빠진 호랑이 얼굴과 코가 눌린 고양이 얼굴. 400년 된 도상과 집에서 뒹구는 반려동물이 한 캐릭터 안에서 겹친 것이다.

서씨 쪽은 조금 다르다. 눈이 여러 개 달린 초자연적인 까치이고, 머리에 작고 검은 갓을 쓰고 있다. 이 갓을 두고 국내에서는 서민(까치)이 양반(호랑이)의 갓을 빼앗아 썼다는 도상 해석과 연결짓는 읽기가 나왔다. 앞서 말한 권력 풍자 해석의 연장선이다. 이름 Sussie는 'suspicious'에서 왔다는 설이 유력하게 돌지만 공식 확인은 없다.

마지막으로, 케데헌이 원전과 어긋난 지점

여기까지 보면 케데헌이 전통을 꽤 성실하게 가져다 쓴 것 같다. 그런데 반론이 하나 있다.

호랑이와 까치는 재앙과 역병을 물리치는 부작화(符作畵) 계열의 그림이다. 반면 저승사자는 죽음을 인도하는 존재다. 전통 도상의 문법에서 이 둘은 원래 같은 화면에 세우는 조합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왔다. 액막이용 그림과 저승의 관리를 한 장면에 배치하는 것은, 말하자면 부적과 장의사를 나란히 놓는 일에 가깝다.

케데헌은 이걸 알고 붙였을 수도, 몰랐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재미있다. 서로 다른 계통의 도상이 하나의 세계관 안에서 만난 셈이고, 이런 재조합은 사실 민화가 늘 해오던 일이기도 하다. 궁중의 형식을 가져다 마음대로 비튼 게 애초에 민화였으니까.

표기 정리

검색하다 보면 세 단어가 섞여 나온다. 정리해두면 이렇다.

  • 작호도(鵲虎圖) — 까치가 앞에 오는 표기
  • 호작도(虎鵲圖) — 호랑이가 앞에 오는 표기
  • 까치호랑이 — 우리말 이름

셋 다 같은 그림이다. 어느 쪽으로 검색해도 같은 도상이 나온다. 미술관과 박물관에서는 작호도와 호작도를 함께 쓰고, 대중적으로는 까치호랑이가 압도적으로 많이 쓰인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2025년 6월 넷플릭스에 공개된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 작품이다. 감독은 매기 강과 크리스 아펠한스. 제98회 아카데미상에서 장편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을 받아 후보에 오른 두 부문을 모두 가져갔고, HUNTR/X의 "Golden"은 빌보드 핫 100에서 누적 8주 1위를 기록했다. 속편은 2026년 3월 공식 확정됐고 두 감독이 다시 맡는다.

속편에서 더피와 서씨가 어떤 역할을 맡을지는 아직 알려진 게 없다. 다만 이 둘의 원본은 이미 434년째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출처

koenja